오늘 새싹 디스코드에서 "우리를 크게 성장시키는 데는 자유로운 환경보다는 억압되고 제한된 환경에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보고 생각난 김에 몇 자 기록해 본다.

2017년, 개발 동아리 회장을 맡았을 때 회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우버 엔지니어 강태훈 님의 '실리콘밸리의 흙수저 개발자' 영상을 함께 시청한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도 ‘지방 출신도 훌륭한 개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라는 용기를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틈틈이 fguy 강태훈 님의 기록을 챙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강태훈 님의 많은 발표, 강연, 인터뷰 자료 중에서 '고통의 시간으로 인한 인생의 낭비'라는 언급에 대해서 곱씹어보았다.

내가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존경스러웠던 사람들이 ‘억압되고 제한된 환경을 극복하고 바꿔나가는 경험을 해라'라는 말을 하는 걸 자주 보았다. 최근에는 스프링캠프에서 박재성 님과 이경일 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그 말을 듣고 자라와서 그런지 '안 좋은 환경에 처하면 회피하는 것보다 노력해서 그 환경을 바꾸는 게 좋은 개발자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이 생각을 견지하며 무언가를 계속 바꿔보려고 노력했으나, 점점 내가 기대하는 방향과 조직의 성향/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결국은 개인이 바라는 성장 방향과 기업과 조직의 성장 방향이 어느 정도 일치되어야 양쪽 모두 성장 가능하다는 단순한 원리를 몸소 깨닫게 되었다.

강태훈 님은 아래 공유된 영상에서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환경을 바꾸라는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인생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니어 시절에 이 영상을 보았을 때는 강태훈 님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나와 맞지 않은 환경이 대부분일 것이고, 그것들에 영향받지 않으려면 내가 그 환경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환경을 바꾸는 역량이 진짜 핵심 역량이고, 나와 맞는 환경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건, 마치 ‘파랑새 증후군’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환상을 계속 좇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의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조금은 디테일해진 부분이 있다. 내가 바라는 환경이 그 회사에 조직/비즈니스적으로 정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인지 저울질을 먼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는 트래픽이 중요한 비즈니스가 아닌데 본인이 추구하는 개발 문화와 각종 Practices 가 트래픽이 많은 기업에 유용한 것들이라면, 그건 오히려 조직에 기여하는게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개발과 엔지니어링에는 정답이 없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내 삶의 목적이 있고, 목적에 부합하는 커리어 방향이 있고, 커리어 방향에 따른 성장 방향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 방향과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 어느 정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방향이 서로 다르다면 강태훈 님 말씀처럼 서로에게 시간 낭비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완벽하게 나에게 맞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적어도 바라보는 방향이 비슷한 기업을 만나야 한다.

하지만 목적과 방향이 분명하게 설정된 사람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향을 쫓는 것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경험을 쌓아나가고, 그 경험을 통해 목적과 방향을 설정하는 역방향의 접근이 현실적일 때도 많다. 결국은 자신에 대해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튼, 괴로움이 지속되어 고통이 되었다면 파랑새를 찾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